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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바울의 머리가 비상 (5) 라떼의 탈모 이야기

황바울의 머리가 비상 (5) 라떼의 탈모 이야기

글: 황바울     감수: 성형외과전문의 김진오

라떼의 탈모 이야기

 

*

 

MZ 세대, 다들 아시죠? 밀레니얼 세대와 Z 세대를 합쳐서 MZ라고 부른다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M : 머리 관리하기
Z : 좋은 세대

인류는 이 세대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된 탈모 치료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전의 탈모 치료는 모두 야매이자 돌팔이였죠. ‘라떼’의 탈모 이야기는 끔찍하고, 더럽고,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재미있기도 하죠.

 

 

과거 탈모에 대한 인식은 어땠을까요?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제사장이 대머리가 되면 신의 저주를 받았다고 보고 참수했습니다. 머리카락이 떨어져 나가면 덩달아 머리까지 떨어져 나가는 셈이었죠.
성경에서도 탈모를 저주처럼 언급합니다. “두려움이 그들을 덮을 것이요 모든 얼굴에는 수치가 있고 모든 머리는 대머리가 될 것이며”(에스겔서 7:18),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 하며”(아모스서 8:10)와 같은 표현이 나오죠.
이렇듯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으니 자연스럽게 탈모는 치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탈모 치료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1500년 전 이집트의 의학 문서인 에베르스 파피루스입니다. 고양이, 뱀, 악어, 하마, 사자 등의 기름을 섞어 머리에 바르라는 거였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환자가 처음 찾아왔을 때는 고양이를 잡아오라고 했을 겁니다. 잡아오면 그걸로 약을 지어주는 거죠. 그런데 효과가 없다고 따지면, 실수로 빼먹은 게 있다고 뱀을 또 잡아오라고 하는 겁니다. 뱀으로도 효과가 없다고 하면 악어를, 악어로도 효과가 없다고 하면 하마를, 하마로도 효과가 없다고 하면 사자를 잡아오라고 하는 거죠. 그렇게 하면 환자들은 세종류로 나뉘게 됩니다. 효과를 본 사람, 말을 제대로 안 들어서 효과를 못 본 사람, 죽은 사람.

 

 

죽고 나서는 이런 괴수를 만나게 될 겁니다. 암무트. 사후 세계인 두아트를 지키는 괴수의 이름이죠. 악어의 머리, 사자의 상반신, 하마의 하반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악어와 사자와 하마의 기름이 필요하다고 했죠? 어쩌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환관이 대머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성생활을 할 수 있는 시기 전에는 대머리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호르몬에 대한 개념이 없었겠지만 뭔가를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방법은 특이했죠. 히포크라테스는 아편, 비둘기 똥, 고추 등을 섞어 약을 만들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염소 오줌을 머리에 바르라고 했죠. 효과가 있었을까요?

 

 

우선 히포크라테스는 대머리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글쎄요? 머리에 염소 오줌을 바르고 다닌다면 성생활을 할 수 있는 시기가 평생 안 오기야 하겠네요.
제대로 된 호르몬 연구는 1942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습니다. 히포크라테스로부터 2000년도 더 지난 시점이었죠. 예일대학교의 해부학 교수였던 제임스 해밀턴은 거세된 남성 104명을 모집했습니다. 사춘기 전에 거세된 사람, 사춘기 동안 거세된 사람, 사춘기 후에 거세한 사람이 섞여있었죠. 사춘기 전에 거세된 남성들은 성인 남자의 특징이 없었습니다. 수염이 없고, 성기가 발달하지 않고, 특히나 대머리가 없었죠.
해밀턴은 이들에게 남성 호르몬을 주사했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수염이 자라고, 근육과 성기가 커지고, 가족 중 대머리가 있는 사람은 대머리가 됐죠. 그러니까 탈모가 있으려면 두가지가 필수적이라는 겁니다. 남성 호르몬과 유전적 요소.

프로페시아라는 제품명으로 유명한 피나스테리드의 개발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1974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구에베도체스’라 불리는 아이들이 보고됩니다. 구에베도체스는 ‘12살의 성기’를 뜻하는 스페인어입니다. 여자아이인 줄 알고 키웠는데 사춘기가 되더니 남성의 생식기가 나온 거죠.
이들은 선천적으로 5알파 환원효소가 부족했습니다. 5알파 환원효소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으로 바꿔주는데, 태아에게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하면 성기가 제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태어났을 때는 여자아이로 오해를 받지만, 염색체는 분명 남자이기 때문에 성기가 뒤늦게 자라게 되는 거죠.
이 병을 앓은 사람들은 전립선이 작았습니다. 그리고 탈모도 없었죠. 머크사(MERCK社)는 여기에 주목해 5알파 환원효소의 작용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약을 개발했습니다. 1992년에 전립선 비대증 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고, 1997년에 탈모치료제로도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효능이 있는 두타스테리드는 2009년 한국 식약처에서 세계 최초로 승인을 받았습니다.
바르는 탈모치료제 미녹시딜도 1988년에야 FDA 승인을 받았습니다. 사실 미녹시딜은 1950년대 궤양 치료를 목적으로 개발되었죠. 하지만 궤양 치료에는 효과가 없고, 혈관 확장에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혈압 치료제로 출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견됐어요. 뜬금없이 털이 나기 시작한 거죠.
이 부작용을 탈모 치료에 이용하면 어떨까 연구를 해서 나온 게 현재의 바르는 미녹시딜입니다. 놀랍게도 미녹시딜이 왜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혈관을 확장시켜 모낭에 산소와 영양소를 더 많이 공급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만 하는 거죠.

 

어느 한 세대를 두고 축복받은 세대라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걱정과 고민이 없는 세대는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계속 없을 테니까요. 그래도 MZ 세대가 머리 관리하기 좋은 세대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아직도 병원을 찾지 않고, 속앓이만 하시는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과거에만 머물지 말고, 이 시대를 누리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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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바울

– 2015 창비어린이신인문학상 동화부문 수상

-2018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부문 수상

– 2020 진주가을문예소설 부문 수상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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