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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GUE 07월호 ‘흰머리랩소디’ 김진오 원장님 칼럼 게제

<흰머리 랩소디> VOGUE 2012년 07월호
 
사라져 가는 기억력처럼 듬성듬성한 머리숱과 빛 바랜 청춘 같은 흰머리는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여자라면 더욱 그렇다. 눈썹이 없는 미인은 있어도 머리카락이 하얗게 샌 모나리자는 없다.
그런데 어느 날, 흰머리가 생겼다.
 
“자기 관리 못 하는 여자처럼 보여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토록 직설적인 발언을 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아직 20대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탈모 때문에 고민하기 시작한 남자라면 다른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동병상련에서 비롯된 선의의 가식쯤은 탈모 샴푸와 함께 어딘가에 챙겨두었을 테니까.
소복하게 피어난 흰 머리 군락을 본 그는 UFO라도 발견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안다. 나도 이미 알고 있다.
언젠가부터 오른쪽 정수리 부근에 원형 탈모증처럼 흰머리가 돋아났다.
몇 가닥을 뽑거나 그 부분만 교묘히 잘라내는 1차원적 조치엔 한계가 있었다.
애써 가려보아도 신경 쓰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햇빛을 쬐면 멜라닌 색소가 생성되어 다시 검게 변하지 않을까 싶어 가르마를 바꿨다.
꼼수를 부려본 것이다. 물론 근거는 전혀 없었다. 태닝을 한다고 해서 흰 고래가 검은 고래가 되는 건 아니니까.
아침에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질 때면 미지근한 한숨과 함께 얼마 남지 않는 청춘의 온기마저 빠져나가는 듯했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남들은 잘 모를 거라 스스로를 다독여왔던 터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흰머리는 나이가 들어 멜라닌 색소가 적어지면서 생기는 것이 일반적인 이유다.
검고 풍성한 머리는 그래서 청춘의 상징이다. ‘실버’는 곧 고령자를 뜻했다.
때로는 모발의 상태가 실제 나이보다 중요했다.
사라져 가는 기억력처럼 듬성듬성한 머리숱과 빛 바랜 젊은 같은 백발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여자라면 더욱 그렇다. 눈썹이 없는 미인은 있어도 머리카락이 하얗게 샌 모나리자는 본 적 없다.
물론 조기 백발은 유전적인 영향도 꽤 크다. 대머리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더욱 운이 없었다. 내 기억속의 아버지는 늘 대머리였고, 어머니는 마흔 살 무렵부터 호호백발이었다.
“스트레스 때문이야.” 사람들이 흰머리를 지적할 때마다
나는 평상심을 가장 한 채 차가운 도시 여자다운 쿨한 반응을 보였다.
전혀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형을 앞두고 하룻밤 만에 머리가 새었다는 일화나,
꿈 속에서 인간이 한 평생 겪을 고난을 다 경험하고 눈을 뜨니 머리털만 하얗게 변했더라고 하는 조신 설화,
사랑하는 남자에게 배신 당한 후 백발이 돼버린 <백발마녀전>의 임청하 등
스트레스와 백발의 상관관계에 대한 전설들을 보라.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현대인들에게 흰머리가 많은 것도 그래서다. 아이러니하게도 평균 수명의 증가와 함께 청장년층의 흰머리도 늘어만 갔다.
학원 교육에 시달리는 초등학생 중에도 심각한 새치로 고민하는 사례가 꽤 있다.
조로증에 걸린 이 사회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 탓이다.
 
“현실에서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된 예를 본 적은 없어요.
흰머리는 모근에서부터 시작되어 올라오는데, 보통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가 한 달에 1cm정도거든요.
그러니 적어도 1년은 걸리겠죠. 하지만 정신적 충격이나 스트레스가 영향을 주는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NHI뉴헤어모발이식센터 김진오 원장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시적으로 모발 중간 부분이 하얗게 될 수 있다고 했다.
면역 기능에 이상이 생겨도 그렇다.
우리 몸에 침투한 나쁜 바이러스에 반응해야 할 방어세포들이
멜라닌 색소 같은 자기 몸의 구성 성분을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갑상선 기능 저하, 빈혈 등은 대표적인 자가면역 질환이다.
과로, 과음,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부족도 호르몬에 이상을 주고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노화로 인한 흰머리는 귀 위쪽부터 헤어 라인을 따라 점차적으로 탈색이 진행되며
윗머리, 앞머리, 뒷머리 순으로 이어지는데 비해 이런 경우엔 특별한 진행 순서가 없다.
왼쪽 뇌를 주로 사용하는 오른손잡이라고 해서 머리 왼쪽 부분에 흰머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대신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몸이 회복되면 머리카락도 저절로 검게 돌아온다고 했다.
단, 시간이 문제였다. “탈모와 마찬가지로 흰머리도 오랜 시간 진행되었을 땐 회복이 힘들어집니다.
원형 탈모의 경우엔 1년이 기준이죠.” 서둘러야 했다.
 
그런데 어디에도 치료법이 없었다.
볶은 검은콩을 한 움큼 집어먹고 기적의 하수오를 달여 마신다고 해서 크게 달리질 것 같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민간 요법이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히 정성을 다했을 때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곤 했다.
게다가 어떤 방법들, 예를 들어 잠들기 전마다 신선한 나무딸기 100g을 달인 물로 머리를 감는다든가
소주 한 잔에 검은깨로 짠 기름 한 숟가락을 타서 식전에 마신다든가 하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피로를 몰고 왔다.
 
그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평생 흰머리 걱정은 없을 것만 같았다. 물론 염색이라는 간단한 방법이 있지만,
그건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었다. 염색의 번거로움과 비용,
독한 염색 약에 두피가 약해지고 시력이 손상되는 문제는 어떻고!
그보다, 호환마마가 두렵지 않은 21세기 의학으로 고작 흰머리도 치료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거듭된 의혹 제기에 마지못한 듯 의사가 말했다.
“멜라닌 세포를 복구하기 위해 줄기세포 이식이나 RRP같은 자가혈액치료를 시험해 볼 수는 있겠지만,
그 역시 공식적으로 검증된 치료 방법은 아닙니다.” 흰머리 때문에 그런 시도까지 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결국은 제대로 된 영양 섭취와 충분한 휴식, 규칙적인 생활습관,
스트레스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전부였다.
‘피로 사회’로 명명된 현 시대엔 거의 불가능한 얘기다.
 
흰머리 염색을 위해 미용실을 찾던 날, 기분이 묘했다.
새파랗게 어린 아이돌 스타는 머리를 온통 새파랗게 물들이고,
남들은 올여름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멀쩡한 머리를 일부러 탈색하고 금발로 만든다는데,
이렇게 화창한 날에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10년째 내 머리를 만져온 미용실 원장은 묵묵히 회춘을 위한 마법의 약을 제조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시간 만에 머리카락은 검고 생기 있는 얼굴을 되찾았다. 물론 그 순간에도 자꾸만 시간은 흘렀다.
흰머리는 이제부터 죽음처럼 내 머리끝에 꼭 달라붙어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염색 약 속에 숨은 나의 흰머리는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치매 예방주사와 더불어 더 좋은 염색약이 개발되길 바라는 수밖에. 그래도 대머리보다는 낫다.
 
에디터 / 이미혜
스타일리스트 / 석지혜  모델 / 오윤영  헤어 / 조영재  메이크업 / 송윤정